<신들의 고향, 제주를 걷다>

신들의 고향, 제주를 걷다―길에서 만나는 제주 신화

출간일: 2024년 6월 30일
정가: 18,000원
분야: 인문학, 알렙

구매 링크 알라딘 YES24 교보문고

신화 유적지가 곧 마을길인 제주섬

걷고 들으며 만난 신화

ISBN 979-11-89333-80-5 03210

320쪽|신국판 변형(148*210)|4도 올컬러, 반양장


1만 8천 신들의 고향 제주에서, 잊혀져 가는 민간 신앙의 성지를 답사하다.

제주 신화를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주로 제주 창조, 창세 신화를 다뤄 왔다. 이 책은 제주 마을 곳곳에 전하는 신화 이야기 즉 설촌 신화를 주로 다룬다.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제주 당올레길 답사기를 썼던 여연 작가는 제주 신화 전반을 아우르면서도 마을길의 속내를 두루 살펴 다닌다. 『신들의 고향, 제주를 걷다』는 잊혀져 가는 민간 신앙의 성지가 곧 마을에 있음을 밝혀 내고 제주 마을에 전하는 신화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쓰였다. 신화를 읽기 편하게 풀어내면서 길어지지 않게 말을 아꼈고, 해설보다는 감상과 공감을 우선했다. 따라서 이 글은 제주 마을이 전하는 신화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먼지에 싸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서사들을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 있다.

제주의 신들은 무수히 많고 신화 이야기도 풍부하다. 그동안 민속학자들이 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신화들을 구술 채록하여 두툼한 책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들이 많지 않고, 토박이들도 의미 파악이 어려운 제주어들로 인해 제대로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제주 신화 저술가이자 연구자인 여연은 이렇게 구술 채록된 본풀이 중에 그런대로 서사를 갖추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했고, 개미행렬처럼 작은 글자에 돋보기를 들이대었다. 그러면서, “동료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며 답사를 병행했고,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거나 깨달음이 뒤따르면 백사장에서 금싸라기라도 주운 듯 기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여연 작가는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전 책은 각각 출판산업진흥도서(『제주의 파랑새』, 2016)와 세종도서(『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 2017)에 선정된 바 있다.


전통성과 생명력을 동시에 가진 제주 신화, 제주 마을에 전하는 신들의 이야기

제주 신화는 지금도 신앙민들의 제의에서 구술되고 있으니, 전통성과 생명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서사라 할 수 있다. 마을에는 권능에 따라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다. 조천읍 함덕리에는 신을 모시는 신당이 열네 곳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고, 성산읍 태흥리와 온평리에도 열 곳이 넘는 신당이 있다고 한다. 제주도 서쪽 지역에도 도깨비 신화나 영등 신화처럼 제주의 민속 문화를 형성하는 내방신들의 서사를 간직해 오고 있다.

정보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경제 논리에 휘말려 낱낱의 정보로 파편화되며 서사가 사라진다. 서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심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에 전해 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존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아오는 일이다.

이 책은, 제주 신화의 보물창고, 구좌와 우도(1장)의 마을 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바다와 산을 품은 조천의 신앙(2장), 구구절절 사연 많은 우리 곁의 신성(3장), 마을을 세운 한라산의 신(4장), 산방산 들녘과 금악의 산과 바다(5, 6장), 애월의 당신(堂神)(7장)을 살피면서, 신들이 군웅할거하는 제주시의 신화(8장)를 다뤘다.

먼저 1장 제주 신화의 보물창고인 구좌와 우도이다. 구좌읍 송당리는 제주 신화의 성지이다. 강남천자국에서 들어온 백주또가 사냥신인 소천국과 혼인하여 송당에 자리를 잡고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았다. 이들 아들딸들이 줄이 뻗고 발이 뻗어 손지방상 삼백일흔여덟이 되었고, 여러 마을로 퍼져나가 신으로 좌정했다. 그래서 백주또를 제주 당신의 어머니라고 한다. 구좌에는 송당 외에도 여러 마을에서 신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당본풀이를 전승하고 있다. 구좌를 마을 신화의 보물창고라고 보는 이유이다.

성산포 바로 앞에 위치한 우도에도 마을마다 여러 신들이 좌정하고 있다. 대부분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지켜주는 용왕신과 선왕신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섬에 목축과 관련 있는 산신이 좌정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2장은 바다와 산을 품은 조천의 신앙이다. 제주시 바로 옆에 위치한 조천읍은 한라산 줄기에서 북쪽 바다까지 길게 이어지는 지역이다. 조천 바닷가가 조선 시대 육지와 왕래하는 관문 역할을 했으니, 배를 부리며 번창했던 마을의 역사가 새콧당 신화에 남아 있다. 해녀와 어부들은 부의 신으로 미륵돌을 모시며 만선의 기쁨과 무사 안녕을 기원했고, 한라산 자락 산간 마을에서는 수렵과 농경의 서사를 신화로 담아내었다.

3장은 구구절절 사연 많은 우리 곁의 신성을 다룬다. 성산읍 온평리는 탐라국의 건국신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모흥혈에서 솟아난 세 신이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맞이하고 신방을 차린 ‘혼인지’가 온평리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마을에서 모시는 당신은 세 공주가 아니라, 서울 경기 땅에서 솟아난 세 자매 중 막내인 명오부인이다. 외부에서 성산으로 들어온 신들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올려야 할 정도로 명오부인은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

성산과 함께 표선은 한라산 남동쪽 끝 바닷가에 접하고 있으며, 조선 시대 정의현에 속했다. 정의현 신앙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신은 토산여드렛당의 뱀신인 방울아기씨와 토산일뤠당의 산육신인 용왕황제국 따님아기이다.

4장은 마을을 세운 한라산의 신을 다룬다. 한라산 서쪽 어깨 ‘소못뒌밧’에서 아홉 형제가 솟아났다. 장남은 성산읍 수산리 울뤠모루하로산이고, 차남은 애월읍 수산리 제석천왕하로산이다. 삼남은 남원읍 하례리 산신백관또하로산, 사남은 서귀포 호근리 여드레 산신백관또하로산이고, 오남은 중문리 중문이백관하로산이다. 육남은 색달리 당동산 백관또하로산이고 칠남은 중문면 상・하예리당올레 열뤼백관또하로산이다. 팔남은 안덕면 감산리 통천동의 고나무상태자하로산이고, 구남은 대정읍 일과리 제석천왕하로산이다. 이들 형제들은 한라산에서 내려와 제각기 살 곳을 마련하고 자손을 번창시키며 마을을 이루었다.

5장은 산방산 들녘에 피어난 신들의 이야기이다. 안덕 지역에 좌정하고 있는 신들의 서사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방산을 배경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엉밧, 닥밧, 원당밧, 청밧 등 밭 이름을 신명으로 하는 여신들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사계리 청밧할망 등 산신의 딸들은 산방산 아래 너른 들녘에 좌정하여 농경 시대를 열었다. 대정 지역에서는 신평리 본향당에 전해 오는 신화 하나를 건졌다. 비록 짧은 서사였지만 신축민란의 영웅 이재수를 만날 수 있어 반갑고 소중했다.

6장은 금악의 신과 바다를 건너온 내방신들을 다룬다. 금악계 신앙의 중심에는 정좌수 따님아기가 있다. 정좌수 따님아기는 사냥신인 황서국서와 혼인하여 금악 지역에 좌정하면서 농경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여러 마을로 뻗어나가면서 금악계 신의 계보를 이루었다.

한경과 한림 지역은 신화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편은 아니지만, 당 신화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는 도깨비 신화와 영등신 신화가 전승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깨비 영감신과 영등 바람신은 바닷가 마을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어부와 해녀들의 생업신으로 좌정했다.

7장은 애월에서 만난 당신이다. 애월은 고려 후기 여몽연합군에 항거하다 제주에서 최후를 마감한 김통정 장군의 항몽유적지가 있는 지역이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김통정과 관련한 장수신 신화가 여럿 전승되고 있다.

또한 ‘송씨할망’이라는 여신들이 광범위하게 좌정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애월이다. 대부분 아이를 낳고 건강하게 키워주는 ‘산육‧치병신’의 권능을 지녔다. 민속학자 문무병은 송씨할망을 송당계 신으로 본다. ‘소천국의 딸’이라고 하던 것이 고려 시대로 넘어오면서 차츰 성씨를 쓰게 되자 ‘송씨’로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하가리 오당빌레할망당 본풀이도 송당의 백주또와 소천국을 거론하면서 이곳의 송씨할망이 송당에서 내려왔음을 밝히고 있다.

8장은 신들의 군웅할거, 제주시를 다룬다. 제주시는 통치의 중심인 조선 시대 목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문물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다. 변화의 물결 속에 목관아가 있던 성문 안은 전통신앙의 성소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가장자리로는 여전히 신당과 함께 신화가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다.

신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신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마을 당신들의 대표적 계보인 송당계 아들들도 여섯이나 있고, 하늘옥황 천지왕의 아들인 대별왕과 소별왕이 당신으로 좌정하고 있는 곳도 이 지역뿐이다. 은기선생‧놋기선생이라는 그릇의 신격화도 독특하고, 뱀신과 미륵신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여연 작가는 제주 마을 곳곳을 답사하며, 마을을 세운 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여정에서, “신화를 전승하고 있는 민간 신앙의 성지는 이제 개발과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적과 마주하고 있다. 민간 신앙의 성지가 맞닥뜨린 위기는 우리 자신의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발과 기후위기라는 파고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알작지 해변에 서서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민초들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고 덧붙인다.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공저)과 『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 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 신화』(지노), 아이들이 제주 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 신화』(지노)가 있다.

차례

들어가는 글

01 제주 신화의 보물창고, 구좌와 우도

소박하고 유쾌한 서사, 우도 목지당 신화

동복마을을 일으킨 굴묵밭당 할마님

체오름 앞 사라흘당의 사냥신

송당본향당의 백주또와 소천국

바다와 대륙을 평정한 영웅신 김녕의 궤네깃도

행원의 사연 많은 무신도와 풍자 가득한 중놀이

황토 고을에서 내려온 월정의 서당할망

세화리 본향당의 천자또와 백주또, 금상님

02 바다와 산을 품은 조천의 신앙

마을의 재난을 신의 분노로 담아낸 북촌 가릿당

이승의 염라대왕 초낭골당 대방하르방

열다섯 소녀의 한이 서린 신흥리 볼래낭할망당

해녀와 어부들을 지켜주는 새콧할망

와산 불돗당 옥황상제 따님아기

벼락장군 모신 와산 베락당

와흘본향당의 백조도령과 서정승 따님아기

03 구구절절 사연 많은 우리 곁의 신성

삼달본향당의 황서국서 어매장군

성산의 터줏대감, 명오부인

수산진성에 묻힌 소녀의 울음

시흥리 본향당의 고운 옷감에 묻어 온 신령

잃어버린 소를 찾아주는 신풍리 자운당

가슴 아픈 사연을 품은 신천리 본향당 현씨일월

신이 되어 돌아온 문씨 아기씨

다산과 치병의 여신, 토산 웃당 신중부인

여인들의 신, 토산 알당 방울아기씨

잠수와 어부들을 차지한 바람의 여신 세명주

04 마을을 세운 한라산의 신

신을 모욕한 허좌수의 몰락, 남원 예촌 신화

보목리 조노깃당의 산신 바람웃도

서귀본향당 바람웃도와 고산국, 지산국 자매

도순마을을 꽃 피운 여래화주

색달마을을 연 당동산 백관또

중문 불목당 용궁아기씨의 외로운 처지

05 산방산 들녘에 피어난 신들의 이야기

덕수리 광정당에 전해 오는 한라산신 삼형제

광정당의 흙으로 만든 신상

화순 고성목당에서 만난 신화와 전설의 영웅

사계리의 논농사를 일으킨 큰물당신

감산리 본향 도고샘이 일뤠당 신화

홀로 마라도에 남겨져 죽은 소녀의 애기업개당

대정읍 신평리 일뤠당과 이재수 장두

06 금악의 신과 바다를 건너온 내방신들

금악계 신의 계보를 이룬 정좌수 따님아기

농경 사회를 연 정좌수 따님아기

한경면 낙천리의 생업 수호신 도깨비

고산리 당산봉 기슭의 차귀당

한림읍 한수리 대섬밧당의 영등대왕

07 애월에서 만난 당신

김통정을 처단한 고내리 큰당의 세 장수

금성리 개똥밧당 칠성신

애월읍 상가리 큰신머들 하르방당

유수암당의 김장수

유수암의 설촌 영웅 홍좌수

08 신들의 군웅할거 제주시

표석으로 남아 있는 광양당의 탐라 수호신

제주시 삼도동 각시당의 별공주아기씨

용연 냇가 궁당에 자리 잡은 다산의 여신들

외도동 두리빌렛당에서 만나는 민초들의 생명력

부의 신이 좌정한 화북 윤동지영감당

소별왕과 대별왕을 본향신으로 섬기는 마을들

비극의 사연을 품은 다랑곳 와당당 막개당

소문난 잔치에 볼거리도 많은 칠머리당 영등굿

과거의 영화를 품은 용담 내왓당의 무신도

본문 중에서

제주는 신화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이야기를 전승하고 있다. 그러면 수백 편의 신화에 등장하고 있는 신들은 어떤 신들일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자청비’나 ‘강림도령’, ‘대별왕과 소별왕’ 외에 또 어떤 신들이 있을까? 이 글은 제주 마을이 전하는 신화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먼지에 싸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서사들을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정보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경제 논리에 휘말려 낱낱의 정보로 파편화되며 서사가 사라진다. 서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심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에 전해 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존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아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신화가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거라면, 원시 제주의 인간사를 반영하는 원형의 서사가 바로 송당본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송당본풀이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씨족공동체의 세력 등, 기록되지 않은 제주의 역사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37-38쪽)

월정본향당의 당집은 사냥신인 신산국을 모신 곳이고, 당집 옆에 서 있는 동백나무는 서당할망의 신목이다. 동백나무는 아름다운 여신이 깃들어 있는 신목이라 고운 물색을 감아놓는다. 예전에는 당 울타리 바위 아래로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는데, 일곱 자식이 신으로 들어앉아 있는 궤를 상징했다.

최근에 월정본향당에 가보니 지붕을 새로 만들고 당 마당을 높게 올려 시멘트를 발라놓았다. 제를 지내기 편하게 해놓은 것이지만, 그 바람에 자식들이 좌정하고 있는 바위 사이 궤들이 모두 메워져 버렸다. 숲속 공터처럼 깊고 그윽하고 신비로웠던 분위기들이 편리함에 밀려 사라지고 만 것이다.(62쪽)

그런데 왜 마을의 본향당을 계곡 기슭 동굴에 마련했을까? 어지간한 사람은 근처를 지나가도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꼭꼭 숨겨진 본향당이다. 대포동 콧둥이ㅁㆍ루 웃당, 셋당, 알당도 마찬가지다. 이곳도 가파른 계곡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타잔처럼 나무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내려가야 한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제물을 등에 지고 다녔을 터인데 왜 이런 곳에 당을 마련했을까 갈 때마다 궁금했었다.

신화를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무속 신앙은 이형상 목사의 129개 신당 철폐 이후 일제강점기, 4・3 사건, 박정희 군사정권의 미신 타파 운동 등 고비마다 탄압과 감시를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가파르고 깊고 그윽한 곳으로 숨어든 것이리라.(193-194쪽)

예로부터 제주도는 습한 날씨 때문에 뱀이 많았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뱀을 신령스럽게 생각하고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뱀을 집안의 가신으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특히 차귀당은 서귀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토산 여드렛당과 더불어 제주의 대표적인 뱀 신앙지라 할 수 있다.(241쪽)

신화를 전승하고 있는 민간 신앙의 성지는 이제 개발과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적과 마주하고 있다. 민간 신앙의 성지가 맞닥뜨린 위기는 우리 자신의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발과 기후위기라는 파고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알작지 해변에 서서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민초들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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