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3주년 13호 (봄호) 소개 자료

2024 봄호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서울리뷰오브북스 편

송지우·유정훈·하상응·이나미·정회옥·장석준

정아은·정재완·고명철·박찬국·김영민·박인식

정우현·신현호·부희령·심완선 지음

232쪽|신국판 변형(140×225)|무선|15,000원|2024년 3월 15일

ISSN 2765-1053 41|ISBN 979-11-89333-77-5 (03300)

국내도서 > 인문학 > 학회/무크/계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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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개요

서울리뷰오브북스창간 3주년

민주주의와 선거를 들여다보는 여섯 편의 전문 서평,

특집 리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부터 자연에 이름 붙이기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루는 다채로운 리뷰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요청 아래 2020년 12월 창간준비호(0호), 2021년 3월 창간호(1호)로 출발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3주년을 맞았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첫발을 뗀 창간 예비호부터 12호까지, 지난 3년간 《서울리뷰오브북스》는 77인의 필자가 참여하여 156편의 서평을 통해 198권의 도서를 리뷰했다. 서평을 통해 독자와 책을 잇고, 그럼으로써 한국 사회의 지식 공론장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해 온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계속해서 깊이 있고 다채로운 서평들로 독자들에게 보답하며, 단단한 서평 문화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것이다.

창간 3주년을 맞아 펴내는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이다. 2024년은 사상 최대의 ‘선거의 해’로 꼽힌다. 60여 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열리고, 올 한 해 선거를 치르는 국가의 인구가 전 세계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전 세계가 선거로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를 직시해 보았다. 정치 및 정치학 분야의 전문가 6인의 특집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와 선거 제도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읽으며,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다.

정치철학, 법찰학, 인권학의 교집합을 연구하는 송지우 편집위원은 제이슨 브레넌의 문제작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리뷰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 응답한다. 지속적으로 미국 정치를 소재로 글을 써온 유정훈 편집위원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통해 민주주의 위기 신호를 진단한다. 하상응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민주주의 공부』 리뷰에서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와 원리, 포퓰리즘의 문제를 살핀다. 이나미 생태적지혜연구소 학술위원은 급진적/대안적 민주주의 이론의 핵심 텍스트인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읽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선거와 추첨을 재론한다. 정회옥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21세기 정치의 핵심 화두 중 하나인 ‘정체성 정치’의 문제를 다룬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지역정당』 리뷰를 1962년 체제에 머물러 있는 ‘K-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짚으며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열쇠로 ‘지역정당’을 제안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와 성찰은 영화 리뷰 코너 ‘이마고 문디’에서도 이어진다. 이번 호에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쓴 정아은 작가가 지난해 극장가 최대 화제작이었던 〈서울의 봄〉을 리뷰한다. 정아은 작가는 〈서울의 봄〉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한 점을 호평하며, 내전과 정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영화를 다시 들여다본다.

리뷰 코너에는 서점가에 쇼펜하우어 열풍을 불러온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부터,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모후의 반역』,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를 조망하는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중동 경제 3.0』·『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있게 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 미국 재무부 장관 자넷 옐런의 전기 『자넷 옐런』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채롭게 다루었다. 철학, 역사, 경제, 생물학을 아우르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서평들을 리뷰 코너에 담았다.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꼼꼼히 읽어 봄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부활시키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중에서

1991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다. 민주주의는 가장 공정하고 효과적인 체제로 여겨졌으며, 그 위상과 신뢰도 더없이 높았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있으며, 상호 존중에 기반한 대화와 타협이라는 규범이 무너지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져 있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은 민주주의와 선거가 가장 좋은 제도인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낳는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불안과 혼란이 팽배한 지금,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러한 질문들에 저마다의 답을 제시하는 여섯 권의 책을 골랐다. 이들 여섯 권의 책과 6인의 전문 필자가 쓴 서평을 통해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과 미국의 경험,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와 가치, 선거 제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 정체성 정치, 지역정당 등 ‘민주주의와 선거’ 대한 다층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송지우 편집위원은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에서 정치철학자 제이슨 브레넌의 도발적인 문제의식이 담긴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리뷰한다. 송지우는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에피스토크라시(지식인에 의한 통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을 치밀하게 검토한다. 그리하여 보다 급진적인 민주주의 실험보다 에피스토크라시를 먼저 시도할 명분이 부족함을 지적하며,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함에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를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로 위치시킨다.

그래서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유정훈 편집위원은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에서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정훈은 미국의 경험에 기초한 책을 한국의 현실과 교차해 읽으며, 선거로 시작되는 민주주의 붕괴 현상을 분석한다. 또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해법의 모호함은 저자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길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현실에 맞춰 스스로 찾아야 할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주의에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하상응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에서 정치철학자 얀-베르너 뮐러의 『민주주의 공부』를 소개한다. 하상응은 저자를 따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자유와 평등부터 포퓰리즘의 개념,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한 전투적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까지 민주주의에 관한 쟁점들을 두루 살핀다. 특히,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차별 없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민주주의에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거 외에 다른 특별한 정치적 수단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하는가. 이나미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에서 출간 27년을 맞은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리뷰한다. 『선거는 민주적인가』는 출간된 후 한 세대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울림을 주는 텍스트이다. 이나미는 『선거는 민주적인가』가 선거 외의 다른 정치적 수단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금,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선출 방법인 ‘추첨’을 자세히 소개하며, 선거 제도의 본질적인 불평등성을 비판한 점을 강조한다. 또한 정당에 의한 ‘전체주의화’의 위험과 ‘미디어 전문가의 통치’를 한국 정치의 현실과 교차하여 재론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 아닌 정체성 정치시대이다. 정회옥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톺아본다. 저자는 후쿠야마의 관찰을 따라,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정치의 위기는 존엄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곧 정체성 정치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회옥은 분열되고 파편화되는 집단 간 인정 투쟁이 격렬한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짚으며,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 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아니 그보다 더 긴급하게 정당 제도 개혁이 요청되는 것이다. 장석준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에서 윤현식의 『지역정당』을 읽는다. 장석준은 한국의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위로부터’ 변화시키는 선거 제도 개혁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변화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지역 생활 현장에서부터 기득권 정치에 도전하는 ‘지역정당’이다. 장석준은 저자의 시선을 따라 여전히 한국에서 지역정당이 금지되는 배경인 ‘1962년 체제’와 정당법을 검토하며, K-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에 얼마나 미달하는지, 앞으로 도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있는 서평들이 이어진다.

박찬국 교수(서울대 철학과)는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서점가에 분 ‘쇼펜하우어 열풍’의 중심에 있는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리뷰한다. 박찬국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그동안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쇼펜하우어의 책과 철학에 대한 큰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을 칭찬한다. 그러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닌 그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이며, 특히 본격적인 소개서가 아닌 인생 교훈을 끌어내는 데 목표를 둔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소개와 관련해 몇 가지 이견을 제시한다.

김영민 편집위원은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에서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모후의 반역: 광해군대 대비폐위논쟁과 효치국가의 탄생을 함께 읽으며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을 심층적으로 재검토하는 서평을 썼다. 먼저, 김영민 편집위원은 광해군(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종합적으로 살피며, 이에 대한 역사학계의 논쟁을 치밀하게 검토한다. 나아가, 김영민 편집위원은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한 논의를 조선의 국가 성격에 대한 논의로 확장, 진전시킨다.

중동 전문가 박인식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에서 걸프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 이 쓴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중동 경제 3.0』, 『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을 연결해 가며 읽었다. 세 권의 책을 통해 박인식은 산유국 경제의 초기 형태부터 걸프 국가의 산유국 경제 탈출 과정,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등으로 대표되는 ‘석유 이후’를 준비하는 걸프 국가의 현황까지 두루 살피며 걸프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도모했다.

정우현 편집위원은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에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다룬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룰루 밀러의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정우현 편집위원은 분류학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두 사람이 지향하게 된 세계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고기가 사라졌다’고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입장 모두를 배격하며, 이름과 분류에 관계 없이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경제 평론가 신현호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에서 미국 최고위 경제 정책직을 모두 거친 유일한 인물인 자넷 옐런의 전기를 리뷰한다. 신현호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제·금융 분야 전문 기자인 저자의 시선을 따라 자넷 옐런의 일대기를 관찰하며, 경제와 정치의 접점을 생각한다. 경제학자이자 경제 관료로서 자넷 옐런이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연준과 재무부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막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초래했다. 신현호는 이 과정에서 옐런이 겪은 경험과 반성은, 경제와 정치의 접점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라 말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서울의 봄은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 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이마고 문디에서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저자인 정아은 작가가 2023년 한국 영화 최대 흥행작인 서울의 봄을 다룬다. 정아은 작가는 〈서울의 봄〉이 12·12라는 거대한 사건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극단의 두 남성 캐릭터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한 데 주목한다. 이를 통해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힘이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에 경각심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이 영화가 세대를 관통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한다.

디자인 리뷰

탈네모꼴이 획득한 시대정신은 분명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실험정신이자,

한글 자체가 지닌 조형적 원리에 입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에 대한 열망이었다.”

디자인 리뷰에서는 정재완 편집위원이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썼다. 정재완 편집위원은 인쇄 출판에서 새로운 시도가 풍성하게 이루어지던 1990년대를 돌아본다. 정재완 편집위원은 그중에서도 당대 디자이너들의 실험과 열망이 낳은 한글 탈네모꼴 폰트의 생산과 도입에 주목하여, 1990년대 출간된 탈네모꼴 폰트를 사용한 63종의 단행본 표지 디자인을 살펴본다.

&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메이커에서는 문학 평론가 고명철이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라는 제목 아래,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소개한다. 고명철은 ‘디아스포라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으로서 웹진 《너머》의 지향과 구성을 소개하며, 웹진 《너머》를 만들며 고찰한 디아스포라적 존재가 직면하고 있는 언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언어 민족주의와 한글 중심주의를 경계하며, 지구화 시대에 접어들며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한글이 아닌 현지어로 발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민한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작가 부희령과 SF 평론가 심완선의 에세이 2편이 실렸다.

부희령비행 공포에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불안을 잊기 위해 책 두 권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탄 경험을 회고한다. 영화가 아닌 책을 택한 것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주위를 완전히 잊은 경험은 책에 몰입했을 때뿐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불안을 달래지 못하는 가운데, 작가는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경계를 넘어가던 시절, 혈육도 친구도 아니었으나 한동안 같은 방을 썼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심완선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에서 SF와 웹소설을 ‘사랑할 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그것들을 ‘사랑할 만하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사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 장르 문학을 좋아하는 일은 최근까지 아주 오랫동안 ‘자랑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르의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 덕분에 문학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위계를 넘어 장르 문학을 ‘사랑하고’ ‘사랑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저자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만한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2020년 12월 0호로 출발하여 2024년 3월, 13호와 창간 3주년에 이른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7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물리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7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 및 편집위원 소개

편집위원 강예린, 권보드래, 권석준, 김두얼, 김영민, 김홍중, 박진호, 박훈, 송지우, 심채경, 유정훈, 이석재, 정우현, 정재완, 조문영, 현시원, 홍성욱

편집장 김두얼

필자 (게재순)

송지우

본지 편집위원. 정치철학, 법철학, 인권학의 교집합에 있는 문제를 주로 연구한다.

유정훈

본지 편집위원. 변호사. 《경향신문》에 매달 ‘정동칼럼’을 기고하고, 온라인 매체 《피렌체의 식탁》에는 주로 미국 정치와 연방대법원 사건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다.

하상응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 뉴욕시립대학교(브루클린칼리지)에서 정치학 조교수를 역임했다. 전공 분야는 정치 심리, 여론, 투표 행태, 미국 정치다. 최근 출판된 논문으로는 「민주적 원칙과 당파적 이익: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위성정당에 대한 태도와 투표 선택」(공저), 「한국 유권자의 정당일체감: 사회적 정체성인가, 정치적 이해관계인가」(공저) 등이 있다.

이나미

동아대학교 융합지식과사회연구소 전임연구원,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외래교수, 생태적지혜연구소 학술위원, 생명사상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한국의 보수와 수구』, 『이념과 학살』, 『한국시민사회사: 국가형성기 1945-1960』, 『생태시민으로 살아가기』 등이 있다.

정회옥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며 소수자 정치, 약자, 인권, 차별 문제를 연구한다.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대표작으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한 번은 불러보았다: 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등이 있다.

장석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 기획위원. 저서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근대의 가을』, 『신자유주의의 탄생』, 『장석준의 적록서재』, 『사회주의』,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유령들의 패자부활전』(공저), 역서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길드 사회주의』 외 다수를 펴냈다.

정아은

2013년 장편소설 『모던 하트』로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썼으며,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

정재완

본지 편집위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정디자인과 민음사 출판그룹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월의눈 사진책 디자인을 도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계의 북 디자이너 10』(공저), 『아파트 글자』(공저), 『Designed Matter』(공저) 등이 있으며, 디자인한 사진책 『작업의 방식』이 ‘2022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다.

고명철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 현기영의 소설 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 평론가로 등단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가 있고,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서로는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와 원효』, 『니체와 하이데거』, 『니체와 불교』 등이 있고, 역서로는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 등이 있다.

김영민

본지 편집위원. 작가이자 사상사 연구자. 현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서로 『중국정치사상사』, 산문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공부란 무엇인가』,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생의 허무를 보다』가 있다.

박인식

1980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거쳐 1982년부터 벽산엔지니어링에서 원전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 조사설계에 참여했다. 2009년 사우디 벽산아라비아에 부임해 근무하다가 2021년 귀국한 후 벽산엔지니어링 전문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압둘라 국왕부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로 이어지는 13년간 사우디 격동의 세월을 지켜보았다. 2022년 『무함마드 빈 살만』을 번역했다.

정우현

본지 편집위원. 덕성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이자 분자생물학자. 유전체 손상과 불안정성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과 스트레스에 대한 생명의 다양한 대응 기전을 연구한다. 생물학에는 다른 학문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저서로는 『생명을 묻다』가 있다.

신현호

경제 평론가. 《한겨레》, 《조선일보》 등에 경제에 관한 칼럼을 연재 중이다. 국회, 행정부, 컨설팅 기업, 대학 연구소에서 30년간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가 있다.

부희령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번역과 칼럼 쓰는 일을 주로 했다. 펴낸 책으로는 『구름해석전문가』 등이 있다.

심완선

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 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우리는 SF를 좋아해』, 『SF는 정말 끝내주는데』를 썼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

차례

편집실에서 ∥ 김두얼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 ∥ 송지우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 ∥ 유정훈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 하상응

‘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 ∥ 이나미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 ∥ 정회옥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 ∥ 장석준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두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본 〈서울의 봄〉 ∥ 정아은

디자인 리뷰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 ∥ 정재완

&메이커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 ∥ 고명철

리뷰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박찬국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 ∥ 김영민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 박인식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 ∥ 정우현

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 ∥ 신현호

문학

비행 공포 ∥ 부희령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 심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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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책꽂이

본문 중에서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희생을 통해 쟁취했던 자유선거와 민주주의가 정말로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여겨 왔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꼼꼼히 읽어 봄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부활시키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3쪽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대부분 브레넌이 절차주의로 분류하는 논변을 부분적으로라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많은 경우 민주주의가 여타 정치 형태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을뿐더러, 인간의 자율성

실현, 정치 공동체 구성원 사이 평등의 구현 등 절차주의적 의의가 있다고 보는 혼합 논변을 견지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단지 ‘민주주의는 여타 정치 형태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가 아니라, 동시에 ‘민주주의가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송지우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 24쪽

저자들은 단순한 사례 열거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근거로 합법적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가 전복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정치 지도자에게 독재자가 될 잠재력이 있는지 알려 주는 경고 신호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둘째,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셋째,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넷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그것이다.

―유정훈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 31쪽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인식과 맞물려 돌아간다. 정치에 정답은 없고, 여러 가능한 답들 중에서 주어진 맥락과 환경에 적합한 답을 선택하는 작업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정기적으로 수행되는 선거는 ‘가치와 이념의 자유 시장’이다. (……)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각 정치 진영은 상대 진영을 절멸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긴다. 상대가 만든 법이라고 해도 그 법을 따르겠다는 태도, 우리가 졌다고 해서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뜻을 잘 읽고 설득하여 승리하겠다는 태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정당들이 경쟁하는 방식이다.

―하상응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47-48쪽

선거가 주요 정치 과정이 되면서 ‘우열’의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대표성의 원리는 ‘나와 유사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주장될 수 있지만 결국 투표의 과정은 나보다 탁월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 결국 ‘나를 대표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은 재산 있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뽑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갖는 본질적인 불평등성, 즉 고대로부터 강조되어 온 “선거의 귀족주의적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나미 「‘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 57-58쪽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및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정치적 사건이 현대 정치가 직면하는 도전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고 진단한다.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정치의 위기는 존엄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 아닌 ‘정체성 정치’ 시대이다.

―정회옥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 66쪽

이 책을 통해 우리는 K-민주주의가 실은 얼마나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에 미달하는지, 앞으로 치열하게 도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정당은 다른 어떤 정치 제도보다 더 접근성이 높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정당에 가입해 그 의사결정과 일상 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당 자체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정당』이 소개하는 다른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처럼, 뜻을 함께하는 사람 셋만 모이면 정당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장석준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 79-80쪽

〈서울의 봄〉은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 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했다. ‘우리가 독재자와 싸워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가르치듯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부모 세대에게 불공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맞섰던 젊은 세대가, 〈서울의 봄〉이라는 강력한 이야기에는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정아은 「두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본 〈서울의 봄〉」, 92쪽

독자들이 미처 신경 쓰지 않는 영역을 세심하게 건드리는 북 디자이너의 노고는 조금씩 동시대 시각 문화의 질적 수준을 높여 간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 폰트를 제안하고 실천했던 디자이너들의 유산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은 출판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탈네모꼴이 획득한 시대정신은 분명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실험정신이자, 한글 자체가 지닌 조형적 원리에 입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에 대한 열망이었다.

―정재완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 103쪽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으로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는 2022년 11월 14일 첫걸음을 떼었다. (……) 창간호를 준비하는 과정 동안 무엇보다 《너머》의 편집 방향에서 중심축이 되어야 할 ‘디아스포라’에 대한 통념뿐만 아니라,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해를 다듬어 나가는 공부를 했다. 특히, 그들의 언어가 ‘국어/모국어/모어’의 다층적 층위에서

통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했다. 그리하여 낯선 타방에서 한글 공동체가 직면한 역사의 격동 속에서 한글 사용이 점차

어려워지고 정치적 억압과 금기로 한글 사용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그들의 문학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었)다.

―고명철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 105쪽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다. 그것도 본격적인 소개서라기보다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서 인생 교훈을 끌어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학술서를 평가하듯이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깊이 있고 창의적인 해석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그런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

―박찬국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117-118쪽

광해군의 일생은 어떤 이유로 연구할 가치가 있을까. 특이하게도 왕위에서 쫓겨난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으로

는 노산군(단종)과 연산군도 있으니, 광해군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 광해군을 어떻게 평가하든, 광해군 시대가 조선사의 변곡점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과연, 광해군은 조선사 전체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일까. 창문이라면 어떤 창문일까.

―김영민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의 재검토」, 129쪽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는 우리의 오랜 시장이었다. 우리 기업은 그곳에서 얻은 기회를 통해 양적·질적으로 성장했고, 그것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경쟁은 치열해지고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그만큼 역동적인 시장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걸프 국가는 아직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 걸프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이 쓴 책 세 권을 골라 필요한 부분을 연결해 가며 읽었다.

―박인식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164-165쪽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도 꽃들은 그저 피어나 어디서든 잘 자라고 있다. 자연은 불러 주는 이름이 없이도 서로 어울려 잘 지낸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즉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름을 불러 주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아 합리적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로 생명에 갑자기 없던 생명력이 생기거나 가치가 더 높아질 리 없다. 거꾸로 이름을 빼앗겼다고 하여 분류학에 투신했던 학자들의 노고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우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 186쪽

옐런은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고려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퇴행인지 발전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나 경제의 최고 책임자라는 자리가 정치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 옐런이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연준과 재무부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막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초래했다. 그런 점에서 옐런의 경험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신현호 「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 199-200쪽

출국하는 날 책 두 권을 넣은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불안은 수백만 톤에 달하는 기계가 허공에 떠 있음을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니 현재 상황을 의식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주위를 완전히 잊은 경험은 책에 몰입했을 때뿐이었다. 생각이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 의아했다. 영화가 아니고 책? 그렇다. 영화가 아니라 책. 당신을 떠올린 것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부희령 「비행 공포」, 204-205쪽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사랑한다’에 이어 ‘사랑할 만하다’라는 말을 한다. (……) 내가 사랑하는 숲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만한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바란다. 카스탈리엔의 유리알 유희가 문화의 쓸모를 논하는 사람들에 맞서 섬세하게 지켜야 할 기예였듯이, 여기에도 가치가 있다고, 한 사람이라도 많이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고.

―심완선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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