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렙 새 책 :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

신승철·정유진·최소연 지음 | 268쪽 | 13,000원 | 46판(128×187)

출간일 2023년 2월 5일 | ISBN 979-11-89333-74-4 93300

분야: 사회/정치 > 생태/환경

본파와 현실파를 넘어 떡갈나무 혁명으로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으로 상상하는 생태적 전환의 길

알렙 그린풋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지난해 여름, 생태철학 연구자이자 실천가로 35년간 왕성하게 활동해 온 고(故) 신승철 생태적지혜연구소 소장이 51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알렙 출판사는 생태적 전환에 대한 그의 신념과 헌신을 기리며, 생태적지혜연구소와 함께 그의 유고들을 펴낼 계획이다. 이 책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는 그 첫 번째 결과물이자, 알렙 그린풋 생태민주주의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이다.

여성주의와 생태철학 및 퀴어 이론 연구자인 정유진과, 미학을 연구하는 최소연, 생태철학자 신승철은 생태 운동 전선이 근본파와 현실파로 양분화되는 문제에 천착하여, 양자를 넘어서는 ‘새로운 녹색 운동’의 길을 도모하고자 머리를 맞댔다. 근본파와 현실파의 대립은 생태 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영역에서 오랜 시간 논쟁과 갈등을 겪어 온 숙제이다. 또한, 기후위기와 인류세라는 긴박한 현실에 대한 개입이 요구되는 만큼, 오늘날 더욱더 깊은 토론과 성찰이 요구되는 주제이다. 우리는 근본파와 현실파의 갈등, 대립, 분열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어떻게 양자를 뛰어넘어 새로운 녹색 운동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그 해답으로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연대를 제안한다.

생태적 전환을 위한 연대를 어떻게 꾸려낼 것인가?

생존의 위기가 되어 버린 생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그 방향과 속도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과 논쟁이 따른다. 그중 생태 운동의 전선에 오래도록 자리한 구도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즉각적 대전환을 추구하는 ‘근본파(근본주의적 생태주의)’와 기성 정치와 타협하며 점진적으로 변화를 추진해 나아가려는 ‘현실파(현실주의적 환경주의)’의 양분이다. 현실파가 현실 정치의 장에서 정당 간 연합을 통해 정책적으로 실행 가능한 대안을 직접 관철하고자 한다면, 반대로 근본파는 독립적인 정파를 추구하거나 혹은 현실 정치에의 개입이 과연 유효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두 분파, 근본파(근본주의적 생태주의)와 현실파(현실주의적 환경주의)의 논쟁은 이미 1980년대 독일과 프랑스의 녹색당 내부에서 대두된 바 있다. 시기별, 지역별로 논쟁이 되는 구체적인 세부 내용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녹색 정치는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배타적인 양자택일적 선택지로 갈라져 그 이상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전환을 실천할 구체적인 사람들─전 지구인은 물론이고, 한 국가 내에서 살아가는 주민, 시민, 민중,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한 근본주의적 생태주의의 이상과 목표는 늘 그 실효성이 의문에 부쳐질 것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양쪽 어느 한쪽에 온전히 기댈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생태주의 정치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생태민주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자 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녹색 운동이 가능할지를 고민하며, 저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 철학이었다. 가타리는 몸소 근본파와 현실파 사이에서 살았던 경계인이자 활동가이자 이론가였다. 그는 좌도 우도 아닌 녹색이라는 근본파의 입장을 견지하는 녹색당 활동가로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녹색당과 사회당의 연정을 주장하는 현실파의 입장을 지닌 생태세대에도 이중 가입해 활동하는 행보를 보였다. 즉, 그 자신이 근본파와 현실파를 횡단하는 이론가이자 활동가였다. 가타리는 그 과정에서 근본파와 현실파의 갈등을 실제로 마주하며,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환으로서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을 제언했다.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개인 및 계급, 모든 사회를 고정된 것으로 한정하여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변혁을 저해하는 근대적 ‘주체’ 사상에서 벗어나, 모든 개인에게 내재된 창조성을 강조하고 각 개인이 주체성을 생산하고 새로운 배치의 판을 짜고 있음을 인지하게 하는 존재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본파도, 현실파도 아닌 관점에서 가타리는 생태주의를 세 가지 차원(마음생태와 근본생태주의, 사회생태와 사회생태주의, 자연생태와 환경관리주의)으로 분류, 이를 ‘세 가지 생태학’이라고 부르며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보다 이것들이 서로 맞물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세 가지 생태학은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실천으로서 서로 구별되지만 동시에 하나의 공통적인 윤리-미학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근본파와 현실파라는 이원 대립 구도에서 나아가, 더욱 다양한 흐름이 형성되게 만들었다. 임박한 위기파, 모두의 책임파, 기후정의파, 체제 전환파, 혹은 다른 무엇이든, 이들은 모두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 함께하고 있다. 이 책은 가타리의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을 통해 생태 운동 내부의 각 세력들을 상호 경합·보완하고 재배치를 이루어 나감으로써, 여러 생태학들을 접합하고 연결하자고 주장한다.

여성 운동이나 퀴어 운동은 왜 탈자연화의 길을 가는가?

1장 「자연주의는 생태주의가 아니다」에서 정유진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러 시기 속에서 자연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재조정되었는지에 대해 밝힘으로써 자연에 대한 개념의 차이가 야기한 생태 운동과 여성・퀴어 운동의 대립 구도를 재편한다. 이를 위해 정유진은 각각의 자연 개념이 가진 특성과 자연을 둘러싼 여러 지배적 권력의 형태는 최근 부상 중인 여러 현대 철학적 경향(브루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 도나 해러웨이의 ‘공산과 공생의 이론’, 티머시 모턴의 ‘생태주의적 객체지향 존재론’, 폴 프레시아도의 ‘횡단 신체성과 대항성(countersexual)의 관점’ 등)을 참고해 분석했다. 나아가 그러한 분석을 통해 일부 생태 담론이 배제했던 비인간 존재들의 행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자연을 탈자연화’하면서 ‘재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근본파현실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장 「근본파와 현실파의 논쟁」에서 신승철은 ‘n분절의 생태주의’, ‘스펙트럼으로서의 생태주의’, ‘과정형적이고 재특이화 과정으로서의 생태주의’라는 대안을 재고한다. 또한, 그에 앞서 본격적으로 근본주의적 관점과 현실주의적 관점의 대립을 짚어보며, 독일 녹색당 내의 대립 양상과 아르네 네스의 심층생태주의와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주의 등 생태주의를 둘러싼 여러 이항 대립적 설정의 문제점과 한계를 살펴보았다. 나아가 신승철은 환경 위기에 대응하는 두 가지 흐름, 즉 생태민주주의와 에코파시즘의 대립을 지적하면서 에코파시즘에 대한 경계를 촉구한다. 이를 토대로 신승철은 오늘날 생태주의 운동 내의 논의 구도와 지형을 ‘임박한 위기파’, ‘모두의 책임파’, ‘기후정의파’, ‘체제 전환파’라는 새로운 배치 구도로 정리해 본다.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3장 「근본파와 현실파를 넘어서는 펠릭스 가타리의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에서는 동시대 미술 작품을 통과하며 세 가지 구도를 전부 아우르는 차원에서 주창된 ‘윤리-미학적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우선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최소연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찾아가며, 가타리의 제언이 결코 형이상학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실천 가능함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실제 예술 작품, 그리고 이를 마주하는 관람객의 신체와 정동 등을 아울러 분석하며 ‘예술의 방식’과 ‘윤리-미학적 패러다임’, 그리고 ‘새로운 생태 운동’ 사이의 접점을 점진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최소연은 예술의 방식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 다양한 것들을 풍부하게 창조해 내는 힘이 어떻게 단단하게 고착화된 세계를 변화시키는지 탐구했다.

여러 생태학들을 접합하고 연결시키는 관점이란 무엇인가?

4장 「근본파/현실파 논쟁에서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의 의미」에서는 가타리가 주장한 ‘세 가지 생태학’의 차원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의와 분석이 전개된다. 이 장에서는 ‘마음생태와 근본생태주의’, ‘자연생태와 환경관리주의’, ‘사회생태와 사회생태주의’라는 세 항이 그려내는 도표를 상세히 분석하고, 그 안에서 n분화되어 배치된 여러 생태학적 담론 및 현실화된 실천들을 실증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같은 전략적 지도 제작의 방법을 활용하여 우리는 마음과 영성의 문제, 자연과 인간의 신진대사의 문제, 사회적 관계망과 배치의 문제를 아우르는 정신생태학, 사회생태학, 자연생태학이 어우러진 하나의 판을 짤 수 있다. 이것은 그간의 근본파와 현실파로 분열되어 있던 생태주의를 횡단적이고 통섭적인 형태로 아우르기 위한 시도이다.

생태적 다양성의 미학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5장 「펠릭스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의 미적 재전유」에서는 앞서 3장과 4장에서 살펴본 가타리의 윤리-미학적 패러다임, 그리고 세 가지 생태학적 차원들에 관한 분석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이 글은 기획전 《미래 과거를 위한 일》의 참여 작가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에 대해 신승철이 쓴 평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갈라 포라스-김의 〈휘파람과 언어 변용〉이라는 작품의 분석에서 출발한다. 신승철은 갈라 포라스-김의 예술 실험에서 힌트를 얻어 가타리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핵심적인 전략으로 내세웠던 ‘주체성 생산’, ‘소수자 되기’의 실천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풍부하게 달라져갈 때, 우리의 새로운 녹색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제안한다.

녹색 운동이 나아갈 새로운 길은 무엇인가?

이 책이 목표하는 바는, 생태주의의 주요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생태주의를 올바로 이해하고 생태 운동의 대안과 방향을 잡는 것이다. 미증유의 생태적 재난에 직면하여, 생태 운동의 대안과 방향을 고민하는 것은 결코 한가한 일이 아니다. 위기에 대한 대응이 긴박하고 절실할수록, 운동의 방향을 신중히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철학 및 생태철학 연구자인 정유진, 미학을 연구하는 최소연, 생태 철학자 신승철이 함께 이 책을 집필하는 여정은 그 자체로 서로를 횡단하며 잇는 과정이었다. 세 저자는 때로는 생태근본주의자로, 때로는 기후정의파로, 때로는 사회생태주의자로, 또 때로는 근본파와 현실파를 오가며 생태 운동의 각 세력을 연결·접합하고, 예술의 창조적 방식으로 재배치를 이루어 내는 길을 모색했다.

그린풋 생태민주주의시리즈는?

기후위기와 생명위기 시대에 우리 사회에 대한 인문적 성찰과 대안을 작지만 탄탄한 지식의 풍경으로 담아냅니다. 생태적지혜연구소와 함께 미래진행형의 ‘지혜의 판(plan)’을 만드는 생태민주주의시리즈를 첫선으로, 답으로 주어진 현실을 거부하는 수많은 문제제기에 주목합니다.

저자 소개

신승철(1971-2023)

문래동 예술촌에서 아내와 함께 철학공방 ‘별난’을 운영하면서 공동체 운동과 사회적 경제, 생태철학 등을 공부해 왔다. 2010년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1989)과 마주한 이래로 줄곧 생태 철학을 연구했다. 2019년부터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ecosophialab.com)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조합원들과 함께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으로서 탈성장 전환 사회를 향한 실험과 도전을 해왔다. 동아대 전임연구원, 녹색당 정책자문위원,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경희대 동물실험윤리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저서로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공저, 2022), 『기후 전환 사회』(2022), 『정동의 재발견』(2022), 『떡갈나무 혁명을 꿈꾸다』(2022), 『지구살림, 철학에게 길을 묻다』(2021), 『묘한 철학』(2021), 『모두의 혁명법』(2019), 『탄소자본주의』(2019), 『구성주의와 자율성』(2017) 등이 있다.

정유진

서강대학교 여성학과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같은 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생태적지혜연구소, 연구공간 L에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 퀴어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공저로 『녹색당 선언』,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가

있으며, 『어셈블리』를 공역했다. ‘오귤희’라는 활동명을 사용한다.

최소연

‘예술-정동-사회’의 삼각 구도를 관찰하며 미술 이론을 공부하고 예술 현장에서 일한다. 예술을 통해 더 다양하고, 더 녹색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의 편집위원이며,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를 수료했다. 퍼포먼스 예술에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며, 주로 ‘생태

학적 관점: 윤리-미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비평을 수행하고 있다. 정동을 촉발하는 사물과 예술가 사이의 상호 관계를 조망하는 전시 《내밀한 추동》(SeMA 창고, 2022)을 기획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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