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렙(ALEPH)은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의 소설 제목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히브리어의 첫 문자로, ‘시작’, ‘근원’, ‘첫 번째’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는 인문, 사회, 교양 서적을 꾸준히 내면서, 언제나 사회에 크고 작은 보탬이 되는 책을 만들고자 한다. 2010년 출판사를 설립한 이래, 인문·사회·교양 서적을 출판해 오며, 인문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그리고 2014년부터는 문학(소설, 시) 분야의 책을 본격 출판했다.
알렙의 출판 정신은 “같지 않은 다름”을 추구하는 것이다. 『철학자의 서재』(전3권) 시리즈와 『청춘의 고전』(전2권) 시리즈, 『사진 인문학』, 『유학자의 동물원』 등 특색 있고 차별화된 철학 교양 도서를 내는가 하면, 『혐오 발언』, 『어셈블리』, 『식물의 사유』, 『플루리버스』 등 깊이 있는 성찰적 지식을 담은 서양 철학을 출판했고, 국내 초역으로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그리스 신화』(전2권)를 정식 계약, 번역했다. 『열여덟을 위한 철학 캠프』와 『열여덟을 위한 신화 캠프』 등 청소년 철학 도서의 보급에 힘써 왔다.
2011년에는 『자유와 황홀, 육상』이 올해의 청소년 도서에 선정되었고, 2012년에는 『청춘의 고전』, 『신들의 전쟁』, 『열여덟을 위한 철학 캠프』 등 총 3권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된 바 있다. 2014년에는 한국 소설계에서 이단아적인 존재인 이치은 씨의 소설 『노예 틈입자 파괴자』를 출판하여, 역시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었다. 배이유 씨의 소설 『퍼즐 위의 새』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의 창작기금상을 받았다. 2015년에도 총 3종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 2017년에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총 3종이 선정되었다. 2020년에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2종, 학술부문에 1종이 선정되었다.
현재까지 알렙 출판사는 인문·사회·교양·소설 분야에 공력을 집중하여, 약 13년간 110여 종의 서적을 출판해 오고 있으며, 이중에는 세종도서(우수교양도서 포함)가 약 20종이다. 2020년부터는 전문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를 현재까지 발행해 오고 있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2020년 12월 0호로 출발하여 2024년 3월, 13호와 창간 3주년에 이른 《서울리뷰오브북스》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물리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7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번 ‘토착(vernacular) 과학기술’ 특집은 혁신과 선도국, 추격과 경쟁이라는 시각을 넘어 전 지구적 맥락에서 과학기술이 어떻게 역사와 사회를 바꾸어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지역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건강한 경쟁과 협력을 유지하며 지리적,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미래를 그리는 작업의 단초를 마련하려 했다. 무엇보다 토착 과학기술적 실천을 통해 보다 풍요롭고 정의로운 경제와 사회의 기반이 마련되고, 지구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과학기술적 실천을 각 지역과 공동체, 즉 아래로부터 상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두갑, 「들어가며」, 6-7쪽
토착 과학기술은 비단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특정 지역과 집단의 과학기술 활동을 조명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활동을 통해 인류 전체가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자연적, 기계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자, 현재 전 지구적인 위기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상운, 「토착 과학기술의 지구사」, 39쪽
1970년대 후반 여학생들의 월경 주기 조절을 위한 경구 피임약 사용은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눈에는 ‘남용’으로 비쳤을지 몰라도, 피임 기술의 월경 기술로의 전유이자, 당시 여학생들의 창의적인 월경 기술 사용의 한 예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다양한 월경 기술 사용의 방식들은 ‘생리용품’이라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수동적인 소비자로 그려지는 여성들을 기술을 자신의 몸에 맞추기 위해 적극적인 탐색과 조정을 해나간 적극적 사용자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영주, 「1960-1980년대 한국 월경 기술의 역사」, 68쪽
역설 가득한 북한의 토착화 사례는 근대의 미래를 명징하게 보여 준다. 근대는 허구이기에 퇴화할 수 없고 근대에 포섭된 과학기술, 사상, 체제와 같은 ‘위대한’ 것들 역시 ‘한낱’ 똥, 오줌, 때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붉은 수돗물과 빈대를 직면한 오늘, 북한적 토착화를 레퍼런스 삼아 한 차원 깊은 자기 성찰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박민주, 「서구 근대 상하수도 시스템의 북한적 토착」, 76쪽
〈다다익선〉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그것의 제작과 관리에 참여했었던 기술자들에 관해 기록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기술자’로서 남았다. 단지 자신들이 직접 모아둔 자료, 일기, 비공식적인 『회고록』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간간이 회자될 뿐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기술자’들이 가시화되는 시간이 돌아오기도 하는데, 바로 기술적 인공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예술가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비로소 기술자는 모습을 드러낸다.
―유진희,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보이지 않는 기술자들」, 169쪽
필자는 커먼즈를 세상 모든 존재의 진정한 실태이자, 그러한 존재 인식에 따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떤 새로운 태도와 관점, 삶의 양식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커먼즈란 소유의 한 유형을 넘어 인간과 자연 자체이자 그 총체다. 따라서 커먼즈는 경제나 법 등 어느 한 분야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지적, 실천적 활동의 총체적 원천이자 산물이라는 것이다.
―김건우, 「과학과 법의 생태적 전환과 커먼즈」, 188-189쪽
자연의 권리에 기초한 법의 생태적 전환은 과학과 법 사이의 관계가 한층 긴밀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비인간의 권리 수호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 자연의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시대에 과학과 법이 과거와 차별화되는 관계성을 갖게 될 것인가, 이 관계성은 앞으로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가 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과학자와 그렇지 않은 과학자 간의 충돌도 발생할 수 있고, 새롭게 권리를 부여받은 자연과 과학자, 법정의 연결망 속에서 자연의 행위자적 특성을 분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진희, 「법체계의 생태적 전환과 과학기술」, 203쪽
반커먼즈 논의로부터 커먼즈 논의로의 전환에서 볼 수 있듯이, 소유권에 관련된 법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반영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 이에 최근 과학과 법에서의 커먼즈 논의가 어떠한 사회적 가치와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 보다 명확히 논의되면 그 의의와 실천적 함의에 대한 명확한 상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즉, 커먼즈에 대한 논의가 분배 정의나 환경 정의의 차원에서 어떠한 지향을 보여 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기를바 란다.
―이두갑, 「커먼즈와 소유권」, 207-208쪽
나의 언어로 번역한 커먼즈는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무언가’다. ‘네 것 혹은 내 것’으로 하면 쉽다. 판사들은 정해져 있는 것을 좋아한다. 소유권의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 이유로 ‘네 것 혹은 내 것’으로 하면 쉽다. 하지만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무언가’는 어렵다.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한다. 게다가 어떤 규칙을 정하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김진성, 「내 주변의 커먼즈」, 198쪽
근래에 기존의 인간 중심 법에서 인간 너머의 법으로의 전회라 할 만한 흐름이 존재한다. (……) 생태법이나 지구법학에서는 자연의 권리라든가 동물의 권리 등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런 논의는 여전히 ‘권리’ 중심의 담론이다. 권리 주체를 인간에서 자연, 지구, 환경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담론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요청되고 있고 당위적 타당성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론적, 철학적 난점이라 할 만한 것들도 상당히 많다. (……) 이런 국면에서, 필자는 이론적으로 커먼즈를 존재와 당위 양면의 일차적 기반으로 내세우는 것이 상당히 단순하고 명쾌할 수 있다고 본다.
―김건우, 「토론문에 답하며」, 213-214쪽
연구 현장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활용이 폭넓고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구 진실성 존속을 위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실효성이 있는 규제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 (……) 앞으로 과학 연구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의 활용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절실하다.
―원병묵, 「생성형 인공지능과 과학 연구」, 248쪽
SF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 아닌가 합니다.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실험을 해보는 거죠. 예를 들어, 진 드라이브(gene drive) 기술과 유전자 가위를 접목해서 모기를 멸종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 기술이 눈앞에 있다면 사용할 거냐 말 거냐 하는 겁니다. 모기로 인해 일 년에 약 백만 명의 사람이 사망한다고 하잖아요. 한편으로 모기가 멸종되면 생태계에 생기는 충격파는 또 전혀 알 수가 없죠. 인간에게는 해충인 모기가 다른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요. SF는 그런 사고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요.(홍성욱)
저도 비슷한 의견을 글로 쓴 적이 있어요. 소설의 요소를 주제, 구성, 문체라 하고 구성의 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하잖아요. 소설이 만약 사고 실험이라면 먼저 인물에 대한 사고 실험이 있을 거예요. (……) 그렇다면 SF는 인물, 사건, 배경 중에서 배경, 다시 말해 사회에 대한 사고 실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장강명)
―장강명·홍성욱, 「‘STS SF’가 드러내는 가까운 미래」, 254-255쪽
이 책이 보여 주고 있는 장인의 과학기술적 기지는 수백 년간 조선에서 이어져 온 활동뿐만 아니라, 혹자는 ‘한국형 산업혁명’이라고도 부르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까지 포괄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한국 산업 성장의 제도적 전략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산업들이 한국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활발히 전개됐다가 이후 희미해지고 만 과학기술적 기지를 복원한다면, 그로부터 물질에 더 밀착되고 현실적인 대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유상운,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한국의 과학기술사」, 289-290쪽
서양 과학사와 동양 과학사를 넘어 제3, 제4의 과학사를 드러내고 이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연결되어 발전했는지를 밝히는 ‘온전한 과학사’ 책이다. 제임스 포스켓은 최근 10여 년 동안 과학사의 새로운 발견들을 촘촘히 엮어 아름답고 견고한 양탄자를 만들었다. (……) 서유럽과 동양을 넘어 지구 곳곳의 과학사를 연결하고 넘나들며 과학사의 시야와 지평을 넓혀 주는 책이다. 원제가 ‘Horizons: The Global Origins of Modern Science’, 즉 ‘지평선: 근대 과학의 세계적 기원’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박정연, 「내가 아는 과학사가 반쪽이란 말인가?」, 297-298쪽
작가가 과학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서는 ‘전향’은 변절이 아니라 변화다. 한 사람의 우주가 넓어져 가는 현장이다. 무게중심은 언제나 인문학에 둔 채로. (……) 인문학이 과학을 포괄함으로써 종합적이고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더 탄탄해지기를, 언제나의 위기를 이겨 내고 인간과 사회를 두루 설명해 내며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무거운 구심점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과학과 인문학의 세계를 오가는 과학자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고, 과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권의 책에 담으면서 그는 외치고 있다. 인문학을 지독하게 사랑한다고.
―심채경, 「‘운명적’ 문과의 지독한 인문학 사랑」, 306-307쪽
이 책에서 자본주의는 하나의 충만한 자연을 야금야금 저렴하게 만들어 소진시키는 실행이기보다는 때로는 요란하게 때로는 조용히 얽혀 있는 다양한 종류의 관계를 끊어 내는 과정이다. 희망은 자본주의가 끊어 내는 배치를 이루는 관계적 요소들이 사실은 마주침의 우연성을 통해 계속 협력함으로써 다른 배치를 창발
해 낼 수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송이버섯의 세계는 자본주의의 주변에 자리하며 자본주의의 시작과 중간과 끝에서 계속해서 생을 지속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