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장편소설 <하우스푸어 탈출기> (책 속으로)

책 속으로

난 그저 내 집 하나 지키며 사는 것밖에 다른 욕심 없는데, 그것 하나 지키는 게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너도 참 딱하다. 그놈의 집은 왜 사서 그렇게 궁상을 떨며 사니? 들어가 살지도 못하면서.” 처음 집을 샀을 땐 대단하다고 부러워하던 친구들은 이제 나만 보면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야, 너 얼굴 좀 봐. 너 그러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울산 발령 문제로 신경을 썼더니 아닌 게 아니라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며칠 새 십 년은 늙은 것 같았다. 이렇게 신경 쓰다간 정말 내 명까지 못 살고 죽는 건 아닐까. 그러니 어떡해서든 울산 발령은 피해야 했다. 그래야 내 집을 지킬 수 있었다. 나는 반드시 내 집을 지켜야 했다. 집은 어려서부터 내 유일한 꿈이었다. 엄마 집도, 아빠 집도, 우리 집도 아닌 말 그대로 내 집.

⏤ 1장, 45-46쪽

서울로 올라와 엄마는 다락동 언덕배기 단칸방에 터전을 잡았다. 엄마의 셋방살이는 그렇게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그래도 시골집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미래를 꿈꿀 수 있어 좋았다. 당장이야 어려워도 둘이 같이 벌면 집 하나 못 살까. 자신감이 넘쳤던 것도 잠시. 자리도 잡기 전에 오빠가 생겨버렸다. 시간이 지나 복개천 지금 동네로 내려왔을 땐 이미 뱃속에 내가 자라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두 아이에 치이며 셋방살이를 전전했다. 어린애 둘을 데리고 남의집살이를 하는 건 공중 곡예를 하는 것과 같다며 엄마는 늘 한숨을 쉬었다.

⏤ 2장, 68-69쪽

그렇게 고대하던 우리 집이 생겼음에도, 나는 좁은 베란다에서 밥상을 책상 삼아 이불 더미를 장롱 삼아 벽에 박은 못을 옷장 삼아 살아야 했다. 관에 누우면 이런 기분일까. 베란다에선 꼭 정자세로 반듯이 누워야 했다. 뒤척이거나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미닫이문이 발에 걸려 요란하게 흔들렸다. 다른 식구들은 제쳐두고 그 소리에 내가 언제나 놀라 잠을 설쳐야 했다. 제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빠의 입대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 3장, 111쪽

“이모! 저 대출받았어요. 저한테 파세요. 집!” 이모는 간만에 제법이네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나는 은자 이모의 아파트를 샀다. 서울, 그것도 강남에. 어릴 때부터 꿈꿨던 집주인의 꿈을 정말 이루고 만 것이었다. 내 집이 생기다니. 그동안 안 입고, 안 쓰고, 적금 붓고 곗돈도 부었다. 도망친 계주를 찾아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전라도 섬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자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메었다. 내 이름이 쓰여 있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니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펑펑 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부동산 아저씨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 4장, 165쪽

불량 식품으로 취급받는 과자를 만드는 곳을. 파는 곳도 마트나 슈퍼가 아닌 문방구나 리어카가 전부인 과자를 만드는 공장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가족의 미래를 걸다니. “난 싫어!” 기침을 겨우 멈춘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공장을 인수하는 건 둘째 문제였다. 집을 팔고 이사를 가다니. 공장이 있는 동네는 회사에서 지금 집보다 배는 더 멀었다. 서울의 중간 부분에 있는 우리 집의 위치상 지금은 회사도 공장도 출퇴근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반대 끝부분에 위치한 회사와 공장은 거의 출퇴근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앞으로 몇 년은 더 대출금과 이자를 갚아야 했다. 그러니 방을 얻어 나올 수도 없었다. 아니 출퇴근 문제가 아니라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 5장, 204쪽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 도리 못하고 살면 집은 집이 아니야. 짐승이 사는 우리지.” 갑자기 아빠 말이 떠올랐다. (……)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집만 아니면 희연이처럼 세계 일주는 아니라도 동남아 여행쯤은 갈 수 있을지 몰랐다. 점심시간 사람들과 함께 맛집을 돌며 식도락을 즐길 수 있을지도. 가끔은 작지만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며 효도를 할 수 있을지도 말이다. 전에는 집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집만 아니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어느 순간 내 집은 집이 아닌 짐이 되어 있었다는 걸. 집은 힘을 주는 절대반지가 아닌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곳이라는 걸. 짐이 돼버린 집을 내려놓으면 아빠 말대로 인간 도리 하며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 6장, 251쪽

혼자 왔다고 하자 여자는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딸이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을 확인하고 돌아서려는데 여자는 딸까지 끌어와 셋이 같이 찍자고 했다. 여자가 손에 든 핸드폰엔 곧 작은 등대를 사이에 두고 세 얼굴이 담겼다. 꿈을 이뤄 기쁨에 넘치는 얼굴. 꿈을 마주하곤 실망한 얼굴. 그런 꿈을 꾸는 걸 이해 못하는 얼굴. “한 번 더!” 여자가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나는 마음을 고쳐 할 수 있는 한 크게 웃었다.

⏤ 에필로그, 274-275쪽

이 작품에서 꿈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 애쓰던 봉다미는 기로에 서게 된다. 꿈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것이다. 봉다미뿐 아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갈등에 빠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꿈을 지키는 게 맞을까. 양심을 지키는 게 맞을까. (……)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인생을 걸며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양심까지 버리진 못할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이 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곳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건 힘 있는 사람들이 아닌 소시민들이다. 진짜 성공한 사람들은 양심을 선택하는 행동과 용기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봉다미 같은 특별하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내 나름의 응원이다.

⏤ 작가의 말, 280-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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